새정부가 들어서면서 부쩍 사회적 논란이 심해진 영어 공교육 문제를 생각하노라면, 2005년 출간된 나의 저서 <우리시대 영어담론: 그 위선의 고리들>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 나는 우리 시대 영어 문제의 핵심을 우리 사회 상층부의 "위선"으로 파악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나름대로 모색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 기득권층들은 여전히 그 위선을 떨쳐버릴 줄 모르는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언제나 이 위선의 고리를 끊고, 진정한 영어 교육 개혁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지?
다음은 이 책의 머리말에서 내가 한 말이다.
우리 나라는 줄의 사회다. 온 나라를 들끓게 하는 영어 문제도 기실은 남보다 좋은 줄을 잡기 위한 저마다의 몸부림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영어는 좋은 줄을 잡기 위해 꼭 필요한 수단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식의 영어 공부에 열과 성을 다하는 부모에게 물어보라. 어떤 그럴듯한 이유를 들이댄다 하더라도, 그 기저에는 자기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그래서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속내가 감추어져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서 좋은 대학에 간다는 것이 곧 좋은 줄을 잡는다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인가?
영어가 이렇게 규정되다 보니, 진실로 영어를 잘 해야 하는 전문가가 따로 필요 없게 된다. 누구나 영어를 잘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이 다 영어를 잘 할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조기 유학 등을 통해 영어를 쉽게 습득할 수 있는 소수 계층에게는 엄청난 사회적 특혜가 부여되는 반면, 부실한 학교 영어 교육 때문에 제대로 된 영어 능력을 갖추지 못하는 계층에게는 엄청난 장벽이 생겨나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부실한 영어 교육을 혁신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일차적으로는 영어 교육 혁신이 현 상황에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차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이 암암리에 현 상황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영어의 장벽이 높으면 높을수록 유리하다. 그러면서 영어로 인한 사회적 특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들의 자식들은 일찌감치 영어권 국가로 유학시켜 유창한 영어 능력을 길러주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영어 담론은 위선적일 수밖에 없다. 영어 담론을 주도하는 계층이 대부분 사회 지도층들로서 현 상황의 타파를 절실하게 염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계, 학계, 정계, 재계, 문화계, 언론계 등을 막론하고 다 마찬가지이다.
이 와중에 가장 득을 보는 집단이 그 동안 우리 나라 영어 교육을 주도해온 영어 권력 집단이다. 이들은 실질적인 기여는 별로 하지 못하면서, 그들만의 먹이 사슬을 통해 엄청난 사적 이익을 축적해 왔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실질적 영어 교육 개혁에는 소극적 태도를 보여 왔다. 이 집단 자체가 특정 학맥 중심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줄이다. 결국 우리의 영어 문제는 영어를 통해 저마다 좋은 줄을 잡기 위해 아우성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고, 바로 그 줄 중 하나가 공적 교육의 문제를 사적 이익 추구의 발판으로 이용해 왔기 때문에 우리의 영어 문제가 개선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와 같은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영어 문제와 관련한 각 집단의 위선을 철저히 벗겨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우리의 영어 교육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그와 같은 일을 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다. 아무쪼록 이 책이 영어 문제와 관련한 우리 사회의 위선을 벗겨내고 근원적 문제를 밝혀내는 데 일조를 해, 앞으로는 우리 사회의 영어 논의가 좀더 생산적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2005년을 맞이하며
가락골에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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