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교사의 영어 능력 검정을 촉구하는 글-주간조선
2000년 가을 주간조선 측으로부터 우리 사회 영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고 보낸 글.
이 글에서 나는 영어 전문가 양성부터 제대로 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그 방안의 하나로 전국의 모든 영어 교사들에게 영어 능력 시험을 강제해 영어 능력이 우수한 교사들은 우대하고, 적정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영어 교사들은 교사 자격증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000년 12월 21일자 주간조선에 실제로 게재된 기사에는 주간조선 측이 당시 조선일보가 서울대와 함께 사업을 벌이던 TEPS 등의 시험을 내 글 안에 무단으로 끼워 넣었다. 뿐만 아니라 원래의 내 글을 마음대로 수정해 내 동의도 구하지 않고 실었다.
그러나 현재 주간조선 측 인터넷에 있는 글은 내가 보낸 원래 원고와 대동소이하다.
http://weekly.chosun.com/site/data/html_dir/2000/12/19/2000121977083.html
(원래의 내 글은 내 책 <우리시대 영어담론: 그 위선의 고리들> 7장 3절에도 있음.)
다음은 주간조선 측 인터넷에 실려 있는 내용.
- [한국인의 영어고민] 전문가 제언...한학성 교수
- 영어 교사가 영어공부 안하는 풍토, 능력 검정시험 치르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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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전체가 영어 때문에 난리이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성인들은 성인들대로 영 어에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 그리고 비용을 투여하고 있다. 그런데 학생들이 영어를 공부하 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이며, 성인들의 경우는 주로 취업이나 승진을 위해 영어를 공부한다. 이에 비해 영어를 실제로 사용하거나 영어로 무언가를 하기 위해 공부하는 비율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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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영어 사용 의 필요성을 절감하지도 않으면서 영어에 몰입하는 이상한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 일례로 나는 얼마전 AFKN을 시청할 수 없는 우리 아파트 단지 사정을 유감으로 생각해 이를 해결 해 달라고 입주자 대표들에게 건의하였으나, 아무도 동의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비용이 많 이 드는 것도 아닌 이 일에 사람들은 정색을 하며 반대하는 것이었다. 중산층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조차 영어 방송 시청을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유치원 아이들까지 영어 과 외로 내몰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희극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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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의 동기가 입시나 취업 등에 있는 한, 우리 사회의 영어 수준은 크게 향 상되기 어렵다. 영어 공부의 동기는 영어 사용 자체에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영어로 컴퓨 터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라든가 전자 메일을 통해 외국의 친구들과 대화하고 인터넷에서 정 보를 찾기 위해서, 또는 미국 영화를 즐기거나 외국 어린이들과 놀기 위해서 등 영어를 사 용하여 어떤 활동을 하는 것이 즐겁거나 필요해서 영어를 공부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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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 리 나라에서는 영어를 대충 읽고 대강의 뜻을 파악하는 식으로 공부하는 경우가 보통이라 영어를 실제로 사용하는 능력을 키우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영어 사용에 대한 동기를 부여받 기도 어렵다. 사정이 이런 이유는 무엇보다도 영어 교사들 자신의 영어 구사력이 불충분하 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오직 입학 시험 등의 유형에 맞춘 영어 교육만이 가능하며, 실질적 영어 사용 연습이 이루어지기 어려워 사회적으로는 지속적으로 영어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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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전국민의 영어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정 책을 포기하고 영어 전문가들의 영어 능력부터 향상시키려는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학의 영어 전공 학과들의 영어 교육부터 혁신하여 충분한 영어 능력 없이는 졸업 자 체가 불가능하도록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전국의 영어 전공 학과들을 영어 공용어 구역으로 지정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동안 우리 사회는 실현불가능 한 영어 공용어 논쟁으로 온 국민을 피로하게 하면서도 정작 영어 전문가들의 영어 능력 자 체에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일반 국민들에 대한 영어 요구는 대 폭 낮추는 한편, 영어 전문가들에 대한 영어 요구는 대폭 높여 우리 사회의 실질적 영어 수 준을 높이도록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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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영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한편으로 영어 전문가들을 제 대로 배출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도록 노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영어 교 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의 자질을 검증하는 절차를 마련하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 나라 에는 영어 교사들의 영어 능력에 관한 객관적 자료가 전혀 없다. 웬만한 기업이라면 직원들 의 영어 능력에 관한 객관적 자료를 구비하고 있는 것이 요즈음의 현실임을 상기할 때, 이 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제라도 전국의 영어 교사들의 영어 능력 검정 을 강제해야 한다. 그 결과 적절한 자격을 구비하지 못한 영어 교사들에게는 일정 기간 준 비 기간을 주되, 그 이후에도 여전히 기준에 미달할 때는 이들의 영어 교사 자격증을 박탈 하는 조처를 취해야 한다. 또한 영어 능력과 영어 강의 능력이 출중한 교사들에게는 정부가 인증서를 교부하고 이들이 우대받을 수 있는 조처를 취해, 능력 있는 영어 교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방안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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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교사들 자신이 영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 풍토에서는 영어 교육이 나아지기를 기대할 수가 없다. 사 실 우리 나라에서는 모든 국민이 영어로 인한 중압감을 느끼는 상태에서도 정작 영어 교사 들 자신은 영어 공부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는 물론 현재의 입시 제도가 영어 교 사들로 하여금 별다른 동기를 유발시키지 못하기 때문이기는 하나, 영어 교사들의 영어 능 력에 대한 검정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부는 앞으로 영어 교사들 자신이 가장 열렬한 영어 학습자가 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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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영어 교사들의 영어 능력에 대한 사회적 관리가 시행되고, 실제 영어 사용 능력을 진작하는 쪽으로 영어 교육 방식이 전환되면, 장기적으로는 일반인의 영어 수준도 향상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모든 국민이 영어를 잘 해야 한다는 식의 중압감을 조장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영어는 어차피 외국어이다. 외국어는 필요한 사람 들이 필요한 만큼만 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영어 전문가들의 영어 능력을 충분히 확보 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구축되면 그것으로 족할 노릇이다. 이것은 못하면서 모든 국민 들에게 영어 콤플렉스나 조장시키는 식으로는 나아질 것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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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영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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