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도 2학기말의 일이다. 당시 내가 속한 전공에서는 어느 교수의 재임용 심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당시 전공지도교수의 직책을 갖고 있던 나는 당연직으로 이 심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심사 서류 제출일이 지나도록 심사 서류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나는 바빠서 서류를 내지 못했다는 그 교수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교수는 그 동안 여러 차례 연구실적 우수 교수로 포상을 받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심사일이 다가왔다. 심사 장소에 나가보니, 너절한 서류들이 잔뜩 첨부되어 왔다. 그 안에 제대로 된 논문 형식을 갖춘 글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이런 심사에는 자신이 대표적으로 내세우고자 하는 논문을 첨부하는 것이 통례인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심사대상자는 연구실적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금전적 포상까지 받은 사람이 아닌가?
심사위원장인 학장은 재임용에 필요한 최소 논문 실적 조항을 찾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 상태로는 이 사람의 논문 실적을 제대로 보기 어려우니, 연구처로부터 이 사람의 연구실적 목록을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연구실적 목록표에 따르면, 이 사람은 재임용에 필요한 최소 연구실적을 그야말로 가까스로 충족하는 것이었다.
연구실적 우수 교수가 최소 요건을 간신히 통과한다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재임용 통과라는 의견서를 내고 이 일을 잊고 있었다.
그 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두어 번 일어나더니 급기야 연말이 가까운 어느 날 학장이 갑자기 심사위원들을 호출했다. 그 자리에서 학장은 심사대상자의 실적을 추가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나는 그 전에도 비슷한 요청을 받고 거절한 적이 있는지라, 재임용 통과 판정을 받은 사람에게 왜 추가로 실적 인정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더구나 추가로 인정할 만한 연구실적물도 없는데 말이다.
그랬더니, 학장은 해당 교수의 연구실적이 학교 요구치에 미달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최초 심사일 날 연구처에서 보내온 연구실적 목록표에는 왜 그렇게 표시되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런 사람이 어떻게 여러 차례 연구실적 우수자로 포상을 받을 수 있었다는 말인가? 그리고 학장은 왜 그 동안 그 사실을 감추고 있었다는 말인가?
이런 의문에 대한 아무런 해명도 없이 학장은 심사위원들에게 이 교수를 내보낼 수는 없지 않느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아무리 다시 검토해보아도 제출된 서류 중 제대로 된 논문 형식을 갖춘 글은 하나도 없었다. 도대체 1-2쪽짜리 연수 자료를 연구 논문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 말이다. (그 중에는 저서 4권에 대한 출판예정증명서도 있길래, 교정지 형태의 원고라도 가져오라고 했더니, 밖에 나가 A4 용지 2쪽을 출력해왔다. 그것이 책 1권에 대한 원고냐고 물었더니, 책 4권에 대한 원고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 자리에서 나는 현재의 상태로는 추가로 연구실적으로 인정할 만한 것이 없으니, 해당 교수에게 1년간의 유예 기간을 주어 1년 후 다시 심사하자는 의견을 내었다. 학장은 마지못해 내 의견에 동의하였다.
그리고는 문제가 일어났다. 1년간 심사 유예라는 서류가 올라갈 걸로 예상하고 있던 나는 며칠이 지나도 서류 이야기가 없어 학교 측에 알아보다가, 이 건이 이미 학교 인사위원회로부터 재임용 통과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름대로 알아보니, 이렇게 된 것이었다. 1년 유예 결정을 내린지 1-2일 후 해당 교수가 지방의 어느 학회로부터 논문게재증명서를 받아 학교 측에 제출하고 그것을 근거로 재임용 통과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이었다.
나는 학교 측에 그 게재증명서와 관련 논문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며칠 전까지 아무 논문이 없어 허드레 연수 자료를 논문으로 인정해 달라고 사정하던 사람이 어떻게 정식 논문 게재증명서를 받았다는 것인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럴 논문이 있었다면 왜 그 때 그 말을 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런데 교무처장은 그 서류가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하겠다면서 학장에게 가보라는 것이 아닌가? 학장에게 연락했더니, 학장이 한 일에 네가 웬 간섭이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실제로 학장이 사용한 표현은 훨씬 거친 것이었다.) 나는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당사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랬더니 당사자는 모든 종류의 연락을 끊고 있었다.
나중에 확인된 바이지만, 그 게재예정증명서는 논문도 없는 상태에서 해당 학회가 발행해 준 것이었다. 게다가 당사자는 그 게재증명서의 게재확정일을 변조해 학교에 제출한 것이었다.
내가 제기하는 문제 제기를 학교 당국자가 묵살하는 일이 반복되다가, 해가 바뀌어 학내 주요 보직자 이동이 있게 되었다. 이 때 이 일에 관련이 있던 학장과 교무처장 등이 임기 만료로 교체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몇 번의 우여곡절을 거치더니, 당사자가 사표를 내고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다.
이 일의 결말은 아직도 내게 매우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원래의 결정대로 1년 유예 기간을 두었더라면, 그 교수는 아마 사표를 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또 그에게 허위 게재증명서를 내도록 조언한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과정을 거쳐 허위 게재증명서가 발급되었으며, 또 어떻게 변조까지 이루어지게 되었는지를 밝혔더라면, 우리 대학 사회 내의 부조리 일부라도 척결하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그 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다른 과에서 일어난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 교수는 끝내 진실 규명을 하지 않았다. 아마 많은 부분이 자신의 잘못으로 귀결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교수가 학교를 떠난 뒤, 가짜 서류를 인정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방조까지 한 바로 그 사람들이 자신들은 마치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이 그 교수를 비난하는 말을 듣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나에게 사과를 하거나 유감 표명을 한 것도 아니었다. 이 사람들 때문에 그 교수가 1년 유예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그런데도 일을 그렇게 만든 그 사람들은 그 후에 명예 교수도 되고, 또 모두들 여전히 학교에 버젓이 나다니고 있다. 일부는 듣기에 민망스럽게도 인문학 타령을 하면서 말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자기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기 때문에 큰 해를 입게 된 사람에 대해 미안해하는 마음조차 없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문학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허위 게재증명서를 발급해준 학회도 반성할 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도 처음에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다가 나중에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나서는, 해당 교수에게 책임을 넘기는 데 급급하였다. 그리고는 일이 일단 마무리 되자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그들은 지금도 그들과 관계없는 사람들의 논문에는 엄격한 원칙을 적용하는 시늉을 하면서, 그들과 통하는 사람들의 논문에는 그들끼리의 느슨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중성을 그대로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대학의 지성이 어떻고, 학문이 어떻고 하는 위선을 행하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한 시민단체의 설립에 참여하게 되었고, 거기에서 잠시 부정학위추방운동을 관장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가짜학위, 부정학위, 논문 표절, 가짜 논문게재증명서의 문제는 대부분 학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비호 때문에 해결이 되지 않고 있으며, 용기를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교수의 목소리를 주변 교수들이 외면하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짐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런 교수들 중에는 밖에서는 사회의 부정과 부조리를 비판하며 양식있는 지성인인 양 행동하는 부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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