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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신의 무덤-퍼옴

 

교회는 신의 무덤

 

 

1960년대 초 천주교 서울대 교구 소속 경향신문사가 빚더미에 앉아 경영이 어렵게 되었을 때, 운성(시인 구상의 호) 선생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장군의 도움으로 경향신문사 사장에 취임한 적이 있다. 그때 노기남 대주교를 비롯하여 여러 사제들을 가까이서 보고 저들의 처신에 매우 실망한 나머지, 저들의 비리를 만천하에 폭로하고 나서 천주교와 영영 인연을 끊으려고 마음먹고, 어느 날 대취해서 글을 써 내려가는데, 1949년 원산에서 공산당원에게 끌려가 순교한 형님 구대준 신부가 홀연히 나타나서 극구 말리는 바람에 마치지 못했다고 한다. 교회의 악성(惡性)과 더불어 성성(聖性)을 깨달은 그때의 심경을 선생은 다음과 같이 언표했다.

 

 

 

내가 희망치도 않은 이해에 얽혀

교회의 암흑면을 체험하게 된 것은

내 영혼의 치명상이었다.

 

견월망지(見月望指)라는 불도문자를 되외우고 되씹고 되새겨도

그 더러운 사제의 손에서

성체의 비의를 용납할 수가 없었고

도처에 높이 솟아 있는 교회당들이

회칠한 신의 무덤으로 보여졌다.

 

내 손으로 그들의 가슴과 등에다

‘주홍글씨’를 써붙이지 않은 것은

북한서 공산당에게 납치되어 간

가형 신부의 어질고 슬픈 얼굴이

떠오르고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사도의 우두머리 ‘베드로’가

스승 예수를 한낱 계집종 앞에서

배반한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러한 죄인들로 이어 내려온 교회가

붕괴되지 않고 그 신성성을 유지하는 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정양모 신부의 <내 글 보고 내가 웃는다> 라는 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