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신정아 사건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2007년 여름 우리 사회는 신정아 사건으로 심한 열병을 앓았다. 가짜 학위로 대학 교수가 되고 국제적 미술 행사의 감독 자리까지 거머쥔 한 젊은 여자의 행각은 우리 사회에 요란한 굉음을 일으키기는 하였으나, 단지 그것뿐이었다.
이 사건의 본질은 우리 대학 사회, 나아가 우리 지식인 사회에 퍼져있는 위선, 그리고 비겁함이다. 이 점에서 우리 사회는 변한 것이 별로 없다.
신정아 사건은 밖으로는 정의를 외쳐대는 대학 교수들이 정작 자신들이 속한 울타리 내의 부조리에는 얼마나 무심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신씨가 동국대 교수로 특채된 것은 2005년 9월이고, 신씨 학위의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한 것은 2년 후인 2007년 7월초이다. 이 2년 가까운 동안 동국대의 지성들은 신씨 학위의 문제를 줄기차게 지적하는 내부자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신씨 학위의 문제를 지적하는 인사가 대학 이사직에서 해임되는 사태가 일어나도, 이 대학의 교수들은 대부분 침묵하였다. 이 사건이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면, 신씨는 아마 지금도 동국대 교수로 행세하고 있었을 것이다.
대학 안에서도 권력이 비호하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도 교수가 될 수 있고, 이런 부조리를 지적하는 사람이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는 사회, 말도 안 되는 이런 사태에 대부분의 교수들이 침묵하는 사회, 이것이 신정아 사건이 보여주는 우리 대학의 모습이다. 이런 일은 신정아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흔치 않게 있었으며,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나는 2007년 8월부터 한 시민단체에서 부정 학위 추방 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이 일에 관여하면서 나는 우리 사회 지식인들의 이중성에 다시 실망하였다.
당시는 언론에서 연일 가짜 학위에 대한 보도를 쏟아내던 때였다. 보도 중에는 제목과 필자 이름만 빼고는 오자까지도 똑같은 쌍둥이 논문이 한 학기 시차를 두고 박사 심사를 통과한 것도 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지도교수는 동일한 사람이었다. 이 대학은 대부분의 수업은 한국에서 한국말로 받게 하고, 마지막 학기 1-2주 정도를 미국에 가서 수업 받는 식으로 박사 과정을 운영하는 소위 학위 공장이었다. 이런 방법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 중에 현재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사람들도 있다는 보도였다.
우리 단체에 들어온 제보 중에도 국내 굴지의 대학 교수 중에 이런 유의 비인증 대학 학위를 가진 경우도 있었고, 대학 총장 중에 학위 논문을 표절하거나, 대필시킨 경우도 있었다. 또 어느 명문대 교수는 미국 대학 방문 교수 경력을 마치 전임 교수 경력인 양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는 교수도 있었다.
이런 제보들은 대부분 이미 학내에서 문제 제기가 되었던 것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학교에서 쫓겨난 경우도 상당수 있었다. 또 국가 기관에서 표절 행위를 확인하였지만, 표절 당사자가 여전히 총장직이나 교수직을 수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여전히 해직 교수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하면, 학위 논문을 표절하거나 대필시킨 사람이 총장으로 있는 학교에서 수여하는 학위에 무슨 권위가 있을지 씁쓸하기만 하다. 총장의 문제를 제기하다 해직된 교수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하는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도 궁금하기만 하다.
이들 중 한 가지 사례는 나로 하여금 우리 사회 지식인들의 한계를 절감하게 만들었다. 당사자는 국내 유명 대학 예능계 교수였다. 가족 중에 유명 정치인이 있었다. 그 교수는 석사 학위만으로 유명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재임용되기 위해서는 박사 학위를 취득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임용되었다. 재임용 시기를 넘겨 겨우 학위를 받은 미국의 대학은 비인증 대학이었다. 해당 교수가 미국 대학에 적을 둔 시기는 국내 대학에서 교수로 강의하던 시기와 겹쳤다. 이는 방학을 이용해서 미국 대학의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는 뜻이다. 박사 학위 논문은 자신의 예술 세계에 대한 것이었으며, 그 논문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이 제보를 검토한 우리는 제보 내용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우리와 접촉을 원해온 한 일간지 기자들과 함께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얼마 안 있어 해당 교수의 학위에 문제가 있음이 확인되었으며, 곧 기사화된다는 통보가 왔다. 그러나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들려온 이야기는 그 학교 총장이 그 신문사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학교에서 자체 조사를 할 동안만 기사를 보류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었다. 이 건 자체가 이미 학내에서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묵살된 것이었으므로, 학교 자체의 진상 조사를 하겠다는 것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기사는 역시 나오지 않았다.
이에 우리는 내부 논의를 거쳐 이 내용을 다른 언론사에도 제보하였다. 그러자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들이 준비한 자료를 각 언론사에 돌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기자들에게 명예훼손 소송을 언급하기 시작하였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해도 명예훼손이 된다는 것이었다. 진상 조사를 하겠다며 시간을 벌어놓고, 학교와 해당 교수측은 방어 자료를 준비해 놓은 것이었다. 문제의 본질을 교묘하게 왜곡시킨 그들의 자료와 명예훼손 암시에 기자들은 이 일에서 손을 놓았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시작되었다. 이 대학 당국자와 해당 교수 변호사 측에서 나에게 전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가 제보한 신문사 기자 중 하나가 내 신상 정보를 이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대학 당국자 중 한 사람이 이 신문사 기자 출신이라는 인연이 작용한 것 같았다. 이 기자는 내가 보낸 이메일을 통째로 이들에게 전달하였다. 이 이메일은 후에 이들이 나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낼 때 유일한 증거로 사용되었다. 이들이 믿는 구석은 사실을 사실대로 알려도 명예훼손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 일로 본의 아니게 송사에 휘말린 나는 여러 가지로 실망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우선 시민단체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이 일을 나 개인의 일로 치부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어느새 벌금 걱정까지 하면서, 괜한 일에 잘못 발을 들여놓았다는 투의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이 시민단체가 “사회정의”를 위해 “행동”할 것을 표방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문제의 교수 측이 그 시민단체의 장이나 시민단체 자체를 상대로 소송을 내지 않고, 나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은 이와 같은 결과를 기대하고 계산된 행동이었던 것 같다.
이 대학의 보직자나 과거 보직자 중에는 해당 교수의 학위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나서려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사필귀정이 되겠지요”라는 애매한 말로 얼버무렸다. 당장 송사에 휘말리게 된 내 사정은 알 바 아니라는 투가 역력하였다. 문제의 교수가 속한 학과의 교수들도 몸을 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이 제기하고 싶어 하는 문제를 대신 제기한 사람이 송사에 휘말렸는데도 이들 중 유감을 표명한 교수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제보자로 찍힐까봐 전전긍긍하였다. 이들을 과연 교수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사람들을 위해 나선 나 자신이 후회가 될 지경이었다.
최초에 이 제보를 가져간 신문사 기자들이나, 내 이메일을 통째로 당사자에게 전달한 기자나 기자 자격이 의심되기는 마찬가지이다. 특히 최초에 이 사건을 취재한 신문사 기자 중에는 해당 대학 출입 기자도 있었는데, 이 사람은 문제가 한참 고비를 맞고 있을 때 일주일 동안이나 휴가라는 형식을 빌려 잠적해 버렸다. 그리고는 훨씬 좋은 취재거리를 차지하며 다시 나타났다. 편집 데스크 측과 이 기자 사이에 모종의 묵계가 있지 않았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교육부는 비인증 대학에 대한 아무런 원칙도 없었다. 대학 자체의 판단에 맡긴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당시는 비인증 대학 학사 학위로 국내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위를 취득하거나, 비인증 대학의 석박사 학위로 대학 교수가 된 유명인에 대한 언론 보도가 줄을 이을 때였다. 교육부의 이런 태도는 비인증 대학의 학위로 대학 교수가 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결국 비인증 대학의 학위를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 사회는 신정아 사건으로 떠들썩하기는 하였으나, 곳곳에 숨어 있는 다른 신정아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이들은 교수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학내 권력의 비호를 받아 여전히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에 그런 교수들의 문제를 지적한 교수들은 학내 권력의 미움을 사 오히려 학교에서 쫓겨난 채로 있다. 그리고 다수 교수들은 침묵하고 있다.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는 그 교수들이 밖으로는 정의를 이야기하고 지성을 논하는 위선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는 신정아 사건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신정아 사건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명예훼손은 2007년 가을에 1차로 무혐의 처리가 되었으나, 해당 교수 측이 이의를 제기해 2008년 초에 2차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불필요하게 시간을 끌던 이 사건은 정권이 바뀌고 해당 검찰지청장이 바뀌고 나서야 비로소 무혐의 결정이 내려졌다. 해당 교수 측이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할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 일을 겪으면서 명예훼손 소송이라는 것이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의 치부를 감춰주는 사회적 기제로 작동하는 부작용이 있음을 절감하였다. 선량한 사람들의 명예는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명예훼손 소송이라는 것이 명예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보호해 주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아이러니는 억지 명예훼손 소송에 겁을 내는 언론사 기자들이 있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1>
최근 학술진흥재단에서 자료를 검색하다 문제의 그 교수(편의상 A교수라 칭함)가 박사 학위를 취득한 미국 대학(편의상 B대학이라고 칭함)을 검색하게 되었다. A교수는 예전에는 B대학에서 예체능 분야 박사 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학진에 소개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현재의 학진 자료에는 A교수와 같은 이름으로 B대학에서 예체능 분야의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은 나와 있지 않다. 대신 A교수와 같은 이름을 가지고 같은 학교에 재직하는 다른 교수가 교육학 분야의 전공으로 B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되어 있다.
알아보니 그 학교에는 A교수와 같은 이름을 한 교수가 여럿 있었다. 그 중에 실제로 교육학 분야를 전공한 교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은 B대학이 아닌 미국의 다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마 B대학의 인증 여부가 문제가 되고 난 후 당사자가 자신의 전공을 슬쩍 바꿔버린 모양이다. 마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B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당시 A교수는 B학교가 너무도 훌륭한 학교라서 “인증” 신청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에 비인증 상태로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더니,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그 교수를 비호하던 그 학교 총장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또 그 학교 총장의 부탁으로 A교수에 대한 기사가 나가지 않도록 해준 신문사 사장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A교수측에게 내 인적 사항을 제공해준 다른 신문사 기자는 어떨까? 또 이 문제를 다른 사람을 통해 제보해 놓고는 명예훼손 소송이 불거지자 슬며시 숨어버린 그 교수는 어떨까?
그리고 A교수와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또다른 A교수는 자신이 마치 비인증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처럼 오해받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덧붙이는 글 2>
그 교수를 비호하던 그 학교 총장은 이명박 정권 시절, 권력 주변에 있었다. 그리고 새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 주변에서도 얼굴을 보이고 있다. 참 착잡하다.
<덧붙이는 글 3>
당초 다른 사람을 통해 이 문제를 제보한 사람은 여전히 나에게 아무런 유감 표시도 하지 않고 있다. 이 사람의 배우자는 국내에서 지성인으로 대접받는 잘 알려진 사람이다. 그 지성인이라는 사람은 수십년 간 학위 사칭을 해온 어느 교수와 함께 책을 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함께 강연을 다니기도 하는 모양이다. 참 요지경 세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