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교수" 유감
세상이 어지럽다 보니 말 쓰임새도 어지러워지는 모양이다. 근자에 정치꾼들이 “개혁”이라는 말을 남발하다보니, 어떻게 하는 것이 “개혁”인지조차 모호하게 되어버린 것이 그 한 예일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개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게 생활해온 사람들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개혁” 타령을 하는 것은 지나치다 못해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버너드 쇼는 "최선의 개혁가는 자기자신에게서부터 개혁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The best reformers the world has ever seen are those who commence on themselves)라고 말했다. 진정한 개혁가라면 남에게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먼저 개혁의 칼자루를 겨누어야 한다는 뜻일게다. 그럴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아예 “개혁”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말라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명예”라는 단어도 그 뜻이 자못 왜곡되어 쓰이고 있는 것 같다. 선량한 일반 사람들의 “명예”를 보호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나 능력도 없는 공권력이 “명예”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명예”(?)를 지켜주려고 나설 때는 정말 착잡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명예”라는 말의 뜻이 왜곡되는 데에는 대학의 “명예교수” 제도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교수로서 최소한의 품위나 양식도 엿보기 어려운 사람마저 명예교수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자기 제자와의 불미스러운 일을 감추려고 서둘러 교수직을 사임한 사람이 언론에는 무슨 대학 “명예교수”라고 나오니 도대체 무엇이 “명예”란 말인가? 이 사람은 학교를 그만 둘 때, 사실을 호도하기 위해 자신은 “연구”와 “강의”를 병행할 수 없어 교수직을 사임한다고 했었다. 이 사람이 과연 “명예” 교수가 될 자격이 있는 것일까?
학과를 자기 것이나 되는 것처럼 운영하고,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교수에게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이익이 가게 행동한 교수도 “명예교수” 칭호를 받았다. 후배 교수에게 가야 할 연구비를 착복한 교수도 명예교수가 되었고, 모든 학생들에게 A 학점을 주는 것으로 자리를 보전해온 교수도 명예교수가 되었다. 이러니 연구 결과를 조작하거나 표절을 밥먹듯이 해온 사람들도 나중에는 모두 명예교수가 될 판이다.
이들이 명예교수라면 명예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사람들은 차라리 “명예교수”라는 호칭을 거부해야 하지 않을까? 학자의 양심을 지키려고 노력하다 대학 강단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명예교수"가 될 확률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