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내 이야기

고향이 어디십니까?

점 위의 나 2009. 5. 18. 10:49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답하기 곤란해 할 때가 있었다. 그것은 내가 충청도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난 충청도를 고향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은 그 곳이 나나 내 조상과 별다른 인연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 부모님 고향을 내 고향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내 부모님은 두 분 모두 함경도 출신이다. 그러니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함경도를 내 고향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누님과 동생도 서울에서 태어났으니, 우리 집안에서 충청도 태생은 나뿐이다. 서울에서 고등학교 영어교사를 하시던 아버님께서 충청도에 잠깐 가 계시게 된 것은 큰아버지 사업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내가 충청도에서 태어나게 된 것이다.

 

나에게 고향 같은 기억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이다. 그 곳은 예전에 흔히 이대입구라고 부르던 동네로 그 곳에서 나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초중고교를 다녔다. 특히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아이들과 놀러 다니던 노고산 생각이 많이 난다. 지금은 서강대 뒷산이 되어 있는 이 산은 그 때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그 곳에서 우리는 풍뎅이도 잡고, 전쟁놀이도 하였다. 놀다가 산등성이에 어른이 나타나면, “문둥이다” 하며 도망치곤 했다. 그 때는 나병 환자들이 어린 아이들을 잡아 간을 빼먹는다는 소문이 있을 때였다.

 

나이가 들면서 이 곳이 내 고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히 내 고향도 서울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렇다고 찾아갈 고향이 생긴 것은 아니다. 예전에 살던 곳은 그 때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서강대의 일부가 되어버린 노고산도 예전의 그 모습을 찾아볼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도 고향처럼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 있다. 바로 원주가 그런 곳인데, 나는 1988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3년 반 정도 대학교수 생활을 여기서 하였다. 나로서는 서울을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가장 긴 인연을 맺은 곳이 원주인 셈이다. 대학 교수 초년 시절 나는 이 곳에서 젊은 대학생들과 만났고, 그들과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또 언제나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계시는 정현기 선생님도 이 곳에서 만났다.

 

그 동안 1년에 한두번씩은 원주를 찾으려 했다. 가깝게 지내는 후배와 동창생 녀석이 이 곳에 살면서 반갑게 나를 맞아주는 것이 더욱 고향 같은 느낌을 주곤 했다. 생각해 보니, 원주에 가본지 꽤 된 것 같다. 이 달이 다 가기 전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올리고 난 직후 김형중 선생과 점심을 하다 다음날인 화요일 저녁에 원주에서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화요일 저녁에 모임에 참석한 후 친구인 상지대 이광회 교수집에 가서 새벽 5시까지 술잔을 기울이다 잠깐 눈을 붙인 후 서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