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방문 경력을 정식 교수 경력으로 부풀려 명문대 교수로?
2007년 여름 한 시민단체에서 부정학위추방운동을 벌일 때 받은 제보 하나가 갑자기 생각이 난다. 그 제보는 미국 대학에 교수로 있다는 한 한국인이 당시 언론에 대서특필되던 유명인들의 학력 조작 소식을 듣고 제보해온 것인데, 나름대로 꽤 구체적인 제보였다.
제보 내용인즉슨, 국내 명문대 교수 중 하나가 미국 대학의 단순 방문연구원 경력을 마치 정식 교수 경력인 것처럼 부풀려 임용이 된 것 같다는 것으로, 당시 우리는 사전 조사를 거친 후 몇 가지 의혹에 대한 질의서를 해당 대학에 송부하였다. 다음은 제보 내용이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미국 모주립대에 현직 조교수로 있는 사람입니다. 최근에 한국의 교수 등 저명인사들의 허위학위, 이력과장 등을 보면서 참으로 같은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움을 금지 못하겠습니다. 미국의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저로서는 작금의 한국의 사태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고 용인될 수 있는지 개탄해 마지 않습니다. 오로지 정직과 실력으로 인정을 받아야 하는 미국의 학계나 사회에서는 도저히 한국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보고 경험한 사례만도 여러 건이 있으나 일일이 다 나열하기가 저의 인격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 같아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한 사례만 소개한다면, 2년전 OO대에서 OOOO학으로 박사를 하신 OOO라는 분이 미국 OOOO 대학 OO학과에서 방문 연구원을 한적이 있습니다 (2004년 8월 2004년 12월). 제가 OOOO 대학에서 박사를 2004년에 받았기에 잘 아는데 그 때 OOO라는 분은 한국의 웹페이지나 지인들에게 OOOO 대학에 정식 교수로 임용이 되었다고 얘기하시는 것을 듣고 다소 놀랐습니다 . 학회에서 만난 다른 한국분들이 모두 그 OOO 씨가 OOOO 대학에 정식 조교수로 임용되신 것으로 알고 있더군요. 한국에서 박사를 하시고 미국에 바로 교수로 임용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에, 말이 와전되었겠지 하고 그냥 넘겼습니다. 나중에 우연히 OO대 OOOO 대학원 홈페이지 보니 그 OOO라는 사람이 교수로 임용이 되어 있는데 본인 약력란에 미국 OOOO 대학에 조교수 (2004년 2005년)였다고 기재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미국 대학에서 조교수와 방문연구원은 전혀 틀린 것으로 이 기재가 행정상의 오류가 아니라면 엄연히 허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만약 이 OOO 교수가 OOOO 대학의 정식 (tenure track) 교수의 경력을 인정받아 OO대 OOOO 대학원에 임용이 되었다면 이것은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에 너무 학위위조 이력 과장의 기사가 나와 며칠 전 그 OOO 분의 홈페이지를 보니 이런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경력란에 OOOO 대학의 “조교수”가 아닌 “방문 조교수” 로 바뀌어져 있더군요. 이 방문 조교수조차 명칭이 애매한 것으로 OOOO 대학에 그런 직위 자체가 없을 뿐 아니라 이 OOO 분은 OOOO에 계실 때 강의는커녕 발표 한 번 하신 적이 없으시고 다만 모 미국 교수와 하나의 연구를 수행한 것 뿐 입니다. 한국의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우는 OO대의 젊은 교수님이 사소하나마 이런 과장과 허위를 하신다면 나이 들으신 교수님들은 어떠할 지 우려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의 제보에 대해 의심이 가시거나 확인할 사항이 있으시면 이 이메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익명으로 남고 싶은 이유는 좁은 학계에 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 이름이 거론되면 향후 저의 행보에 큰 제약이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모 교수 올림.
그런데 이 문제가 일단 표면 위로 올라오자 미국 대학에 교수로 있다는 그 제보자는 화를 내면서 자신의 제보를 철회하겠다는 것이었다. 공식적으로 부정학위추방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에게 스스로 제보를 할 때는 그 문제를 다루어달라는 뜻이었을 텐데, 제보자의 이러한 태도는 무척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우선 자신의 제보를 철회한다는 말부터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제보가 허위라면 그 사람은 우리에게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해야 마땅할 것이었다. 또 자신의 제보가 사실이지만 자신의 신원이 공개될지도 모르니 그 문제를 더 이상 다루지 말라는 뜻이라 하더라도, 그는 우리에게 사과를 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미국 대학에 교수로 있다며 거창하게 제보를 시작한 그 사람은 귀중한 시간과 돈을 써 가며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도대체 모르는 것 같았다.
이 사건은 순수하게 선의만을 가지고 어떤 일에 나선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참고 사항>
미국 대학 측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위의 제보 자체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우선 해당 교수는 국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그 미국 대학을 방문 학자(visiting scholar) 자격으로 방문한 것이었다. 강의를 할 필요도 없었고 보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 사람은 굳이 자신의 자격을 "방문 학자(visiting scholar)"가 아니라 "방문 조교수(visiting assistant professor)"로 해 줄 것을 요구해, 서류를 새로 받았다. 이 사람이 당시 국내 대학의 교수가 아니었으므로, 이 칭호는 대단히 어색한 것이다. 그 미국 대학에서 "조교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또한 서류상의 날짜와 이 사람의 실제 미국 체류 기간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서류는 이 사람이 현재 재직 중인 대학에 지원할 때 대단히 중요한 서류로 사용된 정황이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제대로 파헤쳐지지 못했다. 해당 대학의 소극적 태도와 원 제보자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 때문이었다.
-------------
<덧붙이는 글> 2021년 7월 29일
위에서 언급한 제보자는 현재 국내로 돌아와 어느 대학의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극단적 기회주의자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던 그 사람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학생들 앞에 서 있는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