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교수님께
지난 주 C교수에게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냈다. 이 분과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과거 그 분이 속한 학교 내의 부정학위 문제로 해서 간접적으로는 서로 인연이 있는 사이이다. 이 분이 최근 한 신문에 세월호 사건에 대한 글을 실었다. 자기가 속한 학내의 문제, 자기와 가까운 사람이 연루돼 있음으로 해서 당연히 알고 있을 그런 부조리에마저 눈감고 입닫고 있는 사람이 말하는 지성이니 정의니 희망이니 하는 말이 공허하기만 하다. 자기들 때문에 고초를 겪은 사람에게 미안해 하는 마음조차 표할 줄 모르는 정도의 양식을 가진 사람이 사회 전체에 대고 하는 말에 어떤 진정성이 담겨 있는 것일까?
또한 당시 문제가 된 부정학위 교수의 부친은 나름대로 우리 사회에서 잘 알려진 사람인데, 이 분도 요즘 이런저런 종편에 출연하여, 특유의 큰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참 요지경 세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다음은 C교수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
(여지껏 아무 회신이 없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이런저런 글을 언론에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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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교수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경희대에 있는 한학성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 세월호 사건과 관련하여 한 신문에 쓰신 글을 읽고 예전 일이 다시 생각나 이렇게 필을 들게 되었습니다.
예전 일이라는 것이, 신정아 사건으로 온 나라가 소란하던 무렵, 제가 어느 시민단체에서 부정학위추방운동을 벌일 때 겪은 일입니다. 당시 저는 어느 유명 대학 음대 교수의 학위 문제를 비롯해 국내 여러 대학의 부정 학위 문제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상세한 이야기는 제 블로그에 올려놓았으니, 한 번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때 제가 깨달은 것은, 우리나라 지식인 중에는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부조리나 부정에는 애써 눈감으면서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만 정의를 부르짖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당시 그 유명 대학의 전현직 보직자들 중에는 해당 교수의 학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면서도, 그 교수가 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제가 송사에 휘말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사필귀정이 되겠지요”라고 얼버무릴 뿐이었습니다. 사필귀정을 만들기 위해 협조해 달라는 제 요청은 묵살되었습니다. 당시 사필귀정을 이루지 못하게 방해한 해당 대학의 총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최고 권력자 주변에 나타나곤 합니다.
이런 지식인들의 행태는 도처에서 보입니다. 제가 있는 학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부조리에는 아무 말도 안 하면서, 아니 오히려 그런 부조리를 행하면서, 밖으로는 무슨 인문학의 기수인 양 행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분도 이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무슨 글을 쓰셨더군요. 그 분이 지적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는 사실 그 분 자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 분은 남을 향해서 듣기에 그럴듯한 말을 던지는 담대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무슨 인문학의 거성인 양 행세하는 사람들, 특히 이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언론에서 이런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 중에,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부조리부터 척결하고자 노력해온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그 사람들 대부분이 촘스키가 이야기하는 “거짓 예언자”들이 아닐까요?
참 예언자는 어디에 있을지 . . . 언제나 우리 앞에 나타날지 . . . 나타난들 우리가 알아보기나 할지 . . .
이번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된 학생들에게서 희망을 보았다는 말은 무책임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에는 눈감으면서, 아무것도 안 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그 부조리를 바로잡겠다고 나선 사람의 고초를 비웃기까지 하면서, 듣기에 그럴 듯한 말이나 되뇌는 거짓 예언자들이 지금처럼 득세하는 한, 우리 사회 도처의 세월호 선장들은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C교수님께서 그런 거짓 예언자들의 하나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만 줄입니다.
2014년 5월 21일 한학성 드림
(추신: 제 블로그의 다음 글들을 참고하셔도 좋겠습니다.
1. 한국 사회는 신정아 사건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http://blog.daum.net/lonestar71/5668922
2. 당연히 가짜 박사를 거부해야 할 그들이라고 말하는 교수는? http://blog.daum.net/lonestar71/8377634
3. 도교수님, '교양'도 좋지만 먼저 박사학위에 대해 질문 있습니다 http://blog.daum.net/lonestar71/83777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