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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기고·인터뷰·토론

제주 영어공용어화 추진에 대한 글-한국일보-2001년 5월 17일

제주 영어공용어화 추진에 대한 글-한국일보


2001년 봄,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만들겠다는 구상이 알려지면서 해묵은 영어공용어화 논쟁이 다시 불거졌다. 영어를 잘 하기 위해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기본적으로 본말이 전도된 발상으로 보는 나는 이번에도 영어 교육 개혁의 필요성을 다시 역설하였다.

 

제주도는  인구가 적기 때문에 영어교육 개혁을 위한 선결 조건 (예: 교직 등에 영어 능통자를 유인하는 방안 등)을 해결하기가 용이하므로, 나라 전체의 영어 교육 개혁을 일거에 시행하려 하기보다는 제주도를 중심으로 새로운 실험을 해본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나라 전체로 확대해 가는 수순을 밟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제주도를 시발로 해서 우리나라 전체에로 영어 교육 개혁을 확산시키자는 안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우리시대 영어담론: 그 위선의 고리들> 5장 2절을 참조하기 바람.

 

2001년 5월 17일자 한국일보 기고문의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하기 바람.

http://www4.hankooki.com/opinion/200105/h200105171805451A510.htm

 

다음은 게재 내용.

 

 

정부 여당이 제주도에서 영어를 제2공용어로 공식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 대로 시행된다면 제주도에서 영어가 한국어와 함께 법률적으로 공용어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해묵은 영어 공용어 논쟁이 재연될 조짐이 보인다.

 

영어 공용어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외국인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수 불가결하므로 이를 위해 영어 공용어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대론자들은 주로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정체성 문제 등을 거론한다. 그동안 영어 공용어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이 두 입장이 팽팽히 맞서 논쟁은 항상 원점으로 되돌아가기 일쑤였다.

 

그런데 영어 공용어화는 그 사회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영어 능력을 확보한 다음에나 실시할 수 있다.

 

따라서 영어 공용어화로 제주도의 영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발상이다.

 

그리고 현 상태에서는 아무리 제주도에서 영어를 공용어화하려 해도 턱없이 부족한 영어 능력 때문에 할 수 없다.

불가능한 일을 갖고 소모적 논쟁을 반복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국제자유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영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그 방안을 강구하면 된다. 물론 영어 문제를 해결하는 묘책이 없다는 데 우리 사회의 고민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본말이 전도된 정책을 가지고 본질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만드는 일은 긴 시간을 요한다. 여기에는 영어 문제말고도 해결되어야 할 것들이 많다.

 

따라서 정부는 모든 조건들을 감안해 일정한 시간을 두고 그 안에서 영어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려는 정책을 펴야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다음을 고려해야 한다.

 

실질적인 영어 교육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 무엇보다 영어 수업에 '말'이 동원되어야 하고, 영어를 '사용'하는 연습을 시켜야 된다. 이를 위해 제주도의 영어교사 양성방법을 획기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제주도 전체의 영어 공용어화를 운위하기보다 최소한 제주도 소재 대학의 영어 관련 학과에서 영어를 상용어로 지정해 충분한 영어 능력을 연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국의 공무원 중 영어 능력자를 제주도로 파견해 공공부문 영어 서비스의 질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또 전국 혹은 전세계의 영어 능력자를 제주도로 유인하는 현실성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아울러 초일류 통ㆍ번역 전문가를 양성해내는 전문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이들에게 경제적 지원은 물론 군복무 면제 등의 지원을 해야 한다.

 

이와 같은 일은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하지 않고도, 따라서 민족주의적 감정을 자극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불필요한 논쟁은 피하면서 해야 할 일을 하는 지혜를 발휘했으면 좋겠다.

 

한학성·경희대 교수 영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