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직전에 게시한 글을 학교 당국에 보낸 다음날 응용영어통번역과가 문을 연 2018년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 퇴임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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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용영어통번역과 18학번 학생들에게,
2018년 응용영어통번역과가 신설되고 1기로 들어온 18학번 학생들, 여러분들이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첫 두 해 동안은 강의실에서 직접 만났으나, 코로나 사태로 최근 2년간 서로 만나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나게 되어 무척 아쉽습니다.
나는 올해 2월에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원래는 내년까지 명예교수 자격으로 강의할 수 있을 줄 알았으나 여러 사정상 명예교수로서의 강의도 이번 학기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응용영어통번역과는 내가 경희대에서 보낸 30년 세월의 유일한 흔적입니다.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1기 학생들을 대했습니다. 여러분들을 직접 만나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나게 되어 이렇게 글로나마 인사를 전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해주어야 앞으로 들어올 후배들이 우리 응통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조금 더 학교에 남아 있게 되는 학생들은 남은 대학생활 더욱 분발해주시기 바라며,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제 몫을 하는 인재들로 성장해 가기 바랍니다. 얄팍한 술수나 눈속임이 아니라 진정한 실력으로, 거짓의 편이 아니라 진실의 편에서, 무엇보다도 진정한 인격체로서 다른 사람들의 귀감이 되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기회가 되면 여러분들을 일부씩이라도 직접 만나 제대로 하지 못한 작별인사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응통 1기 학생들에게는 올해 초 나온 내 두 번째 시집을 하나씩 주려고 준비해 두었습니다. 머지않은 시기에 그렇게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 모두에게 행운이 함께 하기를 빕니다.
2021년 11월 30일
응용영어통번역과를 만들었으나 퇴임인사도 하지 못하고 그 학과를 떠나며
한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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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수업을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공지 형식을 빌려 간단한 퇴임 인사를 했다. 학교 당국이나 관련 보직자들로부터는 오늘까지도 아무 반응이 없지만 학생들로부터는 당일부터 상당수 메일이 도착했다. 학교나 학과보다 학생들이 훨씬 나은 경희대이며 응용영어통번역과임이 분명하다. 다음은 학생들이 보낸 이메일 중 무작위로 고른 2건이다. 이메일을 보내 아쉬움을 표해준 다른 모든 학생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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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1>
한학성 교수님 안녕하세요. 응용영어통번역과 18학번 ㅇㅇㅇ입니다.
교수님의 수업을 거의 1, 2학년 때 수강했고, 휴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와 오랜만에 메일로나마 이렇게 연락 드리게 되어서 그런지 저를 기억하고 계실지 조차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오늘 동기 채팅방을 통해 교수님이 우리 18학번 응통과 1기 학생들에게 보내주신 편지를 읽고 꼭 연락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교수님께서 무척 엄하신 분이라 생각했었던 적도 있는데, 학기를 연속해서 교수님의 수업을 듣다보니 오히려 다른 어떤 교수님들보다도 열려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를 비롯해서 다른 동기들도, 교수님을 원칙을 중시하시지만 그 안에서의 융통성이 누구보다 빛났던 분, 그리고 특히 우리 1기 학생들을 애정으로 대해주셨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교수님도 여기에 동의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교수님께서 수업 당시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특히 영어학개론과 영어문법에서 배운 내용들은 정말로 현재까지도 학과 수업을 따라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강 당시에는 과제를 하는 것이 버겁기도 했지만, 저와 같이 수업을 듣던 ㅇㅇ, ㅇㅇ 셋이서 모두 제출한 과제에 '+'를 받았을 때에는 너무 기쁘고 뿌듯한 나머지 사진을 찍어놓았던 것도 새록새록 생각나서 메일에 첨부해 보았습니다.
다음 학기에도 원래 교수님이 고정적으로 진행하시던 수업을 듣고 싶어서 수강 계획을 짰었는데, 이렇게 학교를 급작스럽게 떠나신다고 하니 아쉬운 마음이 너무나 큽니다.
대면으로 뵙고 인사드리고 싶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렇게밖에 인사드리지 못하는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머지 않은 날에 직접 뵈어 그동안 정말 감사했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응통과 1기로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12월이 코앞이라 이제 날이 많이 춥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늘 행복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응용영어통번역과 18학번 ㅇㅇㅇ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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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2>
안녕하세요, 한학성 교수님. 저는 응용영어통번역학과 ㅇㅇㅇ입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지고 있는데 건강히 지내고 계신지요.
교수님께서 이번 학기로 명예 교수로서의 강의를 마치시게 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그 동안 제가 들었던 교수님의 강의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대학생활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했던 1학년 시절, 교수님의 영어학개론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 접해보는 생소한 내용에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교수님께서 꼼꼼한 설명해주신 덕분에 영어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영어문법 수업에서는 그 동안 영어를 공부하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관사와 구두점에 대해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영어통사론 수업을 들으면서 촘스키의 지성과 진실을 추구하는 삶의 신념에 매료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학기 고급영문법 수업이 기억에 남습니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이론 체계를 세운 예스퍼슨의 이론들은 물론이고, 수업 중간에 해주신 말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묘비명에 관한 말씀을 들으며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영어 교사를 꿈꾸는 학생으로서 한국의 영어 교육과 한국 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것에 헌신한 헐버트 선교사의 이야기는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교수님, 그 동안 학문적 지식뿐만 아니라 영어를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인문학도로서, 인간으로서의 자세에 대해서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교수님의 강의를 더 이상 듣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러나 교수님의 가르침이 제 머릿속에, 그리고 제 공책에 남아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공부를 하거나 직업을 가졌을 때 이따금씩 그 가르침을 꺼내보려 합니다.
교수님, 교수님의 제 2의 인생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드립니다.
코로나가 진정되어 직접 뵙고 인사를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ㅇㅇㅇ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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