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지만, 영어가 하나의 학문적 탐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1970년대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휴강이 너무 잦아, 수업에서 학문적 자극을 받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특히 나는 넓은 세상을 보며 평범한 삶을 살겠다면서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공부에 더 힘을 쏟고 있었기 때문에, 영어는 오히려 등한시하던 편이었다.
내가 "언어"가 학문적 탐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수출부에서 일을 하던 때였다. 내가 입사한지 한두 달 뒤, 서울대 인문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사내가 수출부에 들어오더니, 6개월쯤 뒤에 미국으로 "언어학" 공부를 하러 간다며 퇴사했다. 이때 들은 "언어학"이라는 말이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을 뿐 아니라, 당시 내 형편이 미국 유학이나 대학원 공부를 생각할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와 언어학과의 인연은 그 상태에서 정지한 채로 있게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한지 2년 이상이 지난 1983년 초여름 무렵, 나는 업무 과정에서 큰 심적 갈등을 겪게 되었다. 이 일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당시 나는 업무상 경험하게 된 회사 간부들의 무책임함, 관료들의 무례함, 그리고 여러 군상들의 때묻음 등으로 해서, 이 일이 과연 내가 평생 할 일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즈음 광화문의 교보문고에 가는 일이 잦아졌는데, 어느날 서가에 꽂힌 책 중 <언어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내 눈에 들어왔다. "언어과학"이라는 말에서 나는 강한 전기를 느꼈다. 나는 그 책을 사서 여기저기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여러사람이 번역한 글을 모아놓은 것인데, 책말미에 붙어 있는 역자 소개에는 역자들 대부분이 국내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미국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공부한 후, 영문과나 영어교육과 교수가 되어 있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이 순간 나에게 몇해 전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다 미국 유학을 떠난 사내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아, 그 사내가 이런 경로를 밟으려 한 것이구나! 그 길은 나에게도 열려 있는 것이었다. 나도 영어를 전공했고, 여러 외국어에 대한 이해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언어를 분석하는 일에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회사를 당장 때려치고 대학원에 진학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지는 못하였다. 단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면서 하루하루 회사 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미국 유학 중이던 친구 하나가 전화를 걸어 왔다. 1년 전 결혼과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난 이 친구는 아내의 출산 때문에 일시 귀국을 한 것이었다. 이 친구와 나는 같은 빌딩에서 근무하던 또 다른 친구 녀석 하나를 불러내어, 회사 근처, 이태원, 신촌에서 밤을 새며 술을 마셨다. 신촌 로타리에 있던 그 술집에서 나는 또 다른 친구 녀석에게 우리도 미국 유학을 가보자는 제안을 하였다. 이것이 내 입에서 처음으로 미국 유학이라는 말이 나온 때였다. 이 때가 1983년 8월이었다.
술이 깬 후 나는 간밤의 일을 기억해 내고, 미국 유학을 가기 위해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의 각 대학에 문의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듬해 가을 학기에 유학을 가기 위해서는, 지원 서류를 1984년 2월까지 각 대학에 보내야 하며, 또 이를 위해서는 두 달 후인 10월에 토플 시험, 11월에 GRE 시험을 치러야만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나는 회사에 근무하며 이 절차를 마쳤다. 그러면서도 미국 대학에서 입학 허가가 오리라는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다.
그렇게 1984년을 맞이하고 3월이 되니, 거짓말처럼 미국에서 입학허가서가 날라오기 시작했다. 4월말 나는 하루 휴가를 얻어 내 인생의 행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고는 다음날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1984년 가을 학기에 당시로서는 미국내 언어학과 중 최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던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언어학과에서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나는 첫학기 통사론 수업 시간에 들은 촘스키의 원리 및 매개변인 이론에 매료되어 이 이론을 전공하게 되었다. 아울러 언어습득이론에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게 되었다.
1987년말에 박사 학위를 받고 1988년 3월부터 대학 교수 생활을 시작했으니, 이 생활이 어느덧 만 20년을 넘었다. 그동안의 생활이 과연 내가 꿈꾸던 생활이었는지는 아직 말하기 어렵다. 단지 교수란 사람들 중에 내가 회사에서 보던 사람들보다 훨씬 기본이 안 된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은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언어가 학문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나에게 처음으로 알게 해준 그 사내는 지금 서강대 영문과 교수로 있다.
(2008년 5월 17일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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