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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소개

<오토 예스퍼슨의 외국어교육개혁론>-2004년 한국문화사

덴마크의 영어교육을 개혁한 오토 예스퍼슨의 저서 How to Teach a Foreign Language를 번역한 책. 2004년 한국문화사 발행.

 

이 책에 나는 다음과 같은 역자 서문을 붙였다.

 

이 책은 덴마크 출신이면서 역사상 최고의 영어학자라는 평을 듣기도 하는 오토 예스퍼슨의 외국어 교육 개혁론을 담은 것이다. 덴마크는 네덜란드와 함께 토플 성적 세계 1, 2위의 영어 실력을 자랑하는 나라이다. 이런 덴마크도 100여 년 전에는 문법 번역식 영어 교육, 입시 위주의 영어 교육 등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영어 교육상의 병폐들을 거의 그대로 안고 있었다. 이를 오늘날과 같이 성공적으로 개혁해낸 것이 오토 예스퍼슨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덴마크 영어 교육이 나아갈 바를 제시하고 또 실행에 옮기었다. 따라서 이 책은 덴마크 영어 교육을 혁신한 원동력을 제공한 책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올해로 꼭 100년 전에 출간된 이 책이 마치 오늘날 우리의 당면 현실 문제를 논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영어 교육이 열악한 상태에 머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스퍼슨이 주장하는 개혁 교수법의 핵심은 외국어 수업에서는 목표어 사용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법 번역식 수업은 목표어 사용보다는 모국어 사용을 극대화시키므로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새로울 것도 없는 이런 내용이 우리 나라에서 여전히 문제가 되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들의 역량 때문이다. 예스퍼슨 자신이 이 책의 첫 장과 마지막 장에서 교사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도 외국어 교육에서 가르치는 사람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외국어 교육 개혁의 관건은 역량 있는 교사의 양성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예스퍼슨의 위대한 점은 이를 덴마크에서 실제로 이루어낸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외국어 수업에서 목표어 사용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예스퍼슨의 원칙은 우리 나라에서는 초중등․대학을 막론하고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최대 책임은 대학 교수들에게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영문과나 영어교육과 교수조차 수업에서 목표어인 영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영문학이나 영어학, 혹은 영어교수법에 대해 한국어로 강의할 뿐이다. 한국어를 매개로 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런 교수들에게서 배우는 예비 교사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수업에서 유창한 영어를 사용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이들은 다른 학과 교수들이나 초중등 영어 교사들에게는 영어로 수업할 것을 권하는 위선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나라의 영어 교육이 개혁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는 하루 속히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 영어 교육이 개혁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전공 과목 강의에서 영어를 사용하지도 않고 영어 사용을 요구하지도 않는 영문과나 영어교육과 교수들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런 교수들에게 영어 교육 개혁을 맡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결코 영어 교육 개혁을 이루어낼 수가 없다. 단지 걸림돌이 될 뿐이다. 생각해 보라.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는 논쟁까지 나오는 나라에서 영문과나 영어교육과 입시 면접에서조차 한국어로만 면접을 일삼는 교수들이 어떻게 영어 교육 개혁을 이루어낼 수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 사회는 대학 교수들을 영어 교육 개혁의 주체로 대우하는 어리석음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이들이 개혁의 대상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들이 스스로 개혁을 이루기는 정치인들이 스스로 개혁을 이루기보다도 더 어렵다. 우리 사회의 어느 집단보다도 더 학연, 지연으로 강고하게 뭉친 영어 교수들이 무슨 개혁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영어 교육 개혁을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영문과나 영어교육과 교수들부터 수업 방식을 개혁하도록 모든 사회 구성원이 압력을 가해야 하며 또 그 실행 여부를 감시해야 한다. 이러지 못하는 한, 우리 나라의 영어 교육 개혁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이 책의 번역 작업은 아무런 연구비 지원 없이 이루어졌다. 사실 이 책의 번역 작업과 예스퍼슨에 대한 연구를 위해 여러 차례 학술진흥재단에 연구비 지원 신청을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번번히 실패로 끝났다. 우리 사회처럼 영어 문제가 엄청난 사회적 이슈가 되어 있는 나라에서 우리 나라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나라에 대한 연구에 학술진흥재단 같은 단체의 지원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나라의 영어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움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영어학계의 문제이기도 한데, 영어학 교수를 자처하면서도 영어 연구보다는 한국어 연구를 본업으로 삼으며 또 허울뿐의 국제 학회에서 발표된 국어학 논문을 국제적 수준의 영어학 논문으로 둔갑시키는 관행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이 국내 영어학계의 주류를 이루는 한, 그리고 이들이 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 지원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 우리의 영어학 발전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영어 문제 해결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의 번역과 관련해 몇 가지 특기할 점을 들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은 1901년 덴마크어로 최초 출간된 예스퍼슨의 저서 『외국어 교육』(Sprogundervisning)을 버텔슨(Sophia Yhlen-Olsen Bertelsen)이 1904년 영역 출간한 것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번역에는 1967년 조지 앨런 & 언윈 출판사가 출간한 13쇄본을 사용하였다.

 

각장의 제목은 영역본에는 없던 것으로 역자가 임의로 붙인 것이다.

 

내용 중 역주라고 표시된 것은 역자가 삽입한 것이다.

 

이 책의 번역 과정에서 아너 율(Arne Juul) 교수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덴마크어 번역은 물론 당시 상황과 관련한 여러 내용은 율교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이 책의 번역을 마무리하던 작년 12월 역자가 코펜하겐을 두 번째로 방문했을 때, 율교수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친히 예스퍼슨이 말년에 거주하던 저택이 있는 헬싱괴르로 함께 여행을 해주었다. 이 자리를 빌어 율교수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아울러 이 책의 번역을 허락하고 또 격려해준 예스퍼슨의 막내 손녀딸 아너 마리 린달(Anne Marie Lindahl)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비어커뢰드(Birkerød)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직접 본 예스퍼슨의 사진첩과 예스퍼슨의 손때가 묻은 작업 노트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특히 그녀의 집으로 가는 길에 겐토프터(Gentofte) 역을 지날 때는 예스퍼슨이 이 책을 집필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며 괜시리 흥분이 되기도 하였다.

 

독일어 번역을 도와준 청주대의 김정민 교수에게도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이 책의 번역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덴마크의 영어 교육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프리드릭슨(Friedichsen) 박사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올해는 이 책의 영역본이 출간된지 꼭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에 한국어 번역본을 출간하게 된 것을 단순한 우연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지난 2000년 내가 처음으로 코펜하겐을 방문했을 때, 내가 머물던 호텔의 바로 맞은편에 아너 율 교수가 살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 마냥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책의 출간이 아무쪼록 우리 사회의 영어 문제를 근원적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어주기를 기대해본다.

 

                                                                                                                                          2004년 4월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