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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내 이야기

방금 거신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보름쯤 전 일이다. 미국 유학중 방학에 잠깐 귀국한 졸업생 하나와 만나게 되었다. 갑자기 약속이 되었기 때문에 일단 둘이 먼저 만나 학교 근처의 식당으로 갔다. 저녁을 시작하면서 합석할 만한 친구가 없나 하고 전화를 하게 되었다.

 

미국 유학중인 이 친구는 2003년 2학기에 내 수업을 처음 들었다. 당시 수업은 대단히 유익했다. 내가 좋아하는 덴마크 학자 오토 예스퍼슨의 외국어교육개혁론이 담긴 책을 가지고 영어로 토론을 하는 수업이었다.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 모두 대단히 진지했고, 대부분 즐거워했다.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그리고 이 수업은 내 20여년 교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 중 하나가 되었다.

 

그 때 수업을 들은 학생 중 상당수가 대학원이나 교육대학원에 진학했고 몇몇은 미국 유학을 갔다. 교사가 된 친구들도 여럿이다. 방송국에 들어가 TV에 얼굴이 비치는 친구도 있고.

 

그 중에 교사가 되어 학교 근처에 산다고 했던 친구가 생각나 전화를 했다. 이 친구와는 작년에도 통화를 한 적이 있던 터다. 그런데 “방금 거신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안내 녹음이 나오지 않는가?

 

그래서 그 친구를 알 만한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이 친구는 졸업 후 지방에서 교사로 있다. 그랬더니, 역시 없는 번호라는 대답이다. 다른 친구에게 걸었더니, 또 같은 대답이고. 그 다음에 건 친구는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는다.

 

그쯤에서 전화를 하는 일을 포기하였다. 차라리 둘이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전화번호가 바뀌면 새 번호를 알려주면 안 되나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하였지만. 그리고 그 날 아주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오늘, 2003년 2학기 출석부를 뒤져 그 때 학생들 명단을 다시 살펴보았다. 얼굴이 떠오르는 학생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도 있다. 그동안 몇 차례 만나본 학생들도 있지만, 한 번도 못 만난 학생들도 있다. 그 학생들은 지금 무엇을 하는지?

 

여기 그 당시 수업을 들은 학생들 명단을 적는다. 혹시 전화번호를 바꾸고도 새 번호를 알리지 않은 학생들이 이 글을 보게 되면, 새 번호를 알려주기 바란다. 다른 학생들도 연락을 주면 무척 반가울 것이다.

 

<2003년 2학기 “영어학읽기” 강좌 수강생 명단>

강영구, 곽성진, 김민희, 김은석, 김자형, 석선영, 손기성, 송유림, 안주영,

왕소윤, 이선미, 이주원, 정세훈, 정주연, 정현주, 지윤림, 한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