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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내 이야기

정지용 시인의 "카페 프란스"

비내리는 양이 예사롭지 않다.  연전에 사나다 히로코 선생이 보내준 『최초의 모더니스트 정지용』이라는 책에서 읽은 "카페 프란스"라는 시가 생각나 다시 들쳐보았다.

 

"나는 자작의 아들도 아모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히여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 테이블에 닷는 내뺌이 슬프구나!"

 

하던 시인의 심정이 오늘 나에게 전해오는 것만 같다.

 

오늘 어느 카페 프란스에 가면 그 시인의 마음이 되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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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프란스 (정지용)

 

 

옴겨다 심은 棕櫚(종려)나무 밑에
빗두루 슨 장명등,
카페 프란스에 가쟈.

 

이 놈은 루바쉬카
또 한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뻣쩍 마른 놈이 압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 처럼 가는데
페이브멘트에 흐늙이는 불빛
카페 프란스에 가쟈.

 

이 놈의 머리는 빗두른 능금
또 한놈의 心臟(심장)은 벌레 먹은 薔薇(장미)
제비 처럼 젖은 놈이 뛰여 간다.

 

           ※

 

『오오 패롵(鸚鵡) 서방! 꾿 이브닝!』

 

『꾿 이브닝!』 (이 친구 어떠하시오?)

 

鬱金香(울금향) 아가씨는 이 밤에도
更紗(사라사) 커-틴 밑에서 조시는구려!

 

나는 子爵(자작)의 아들도 아모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히여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大理石(대리석) 테이블에 닷는 내뺌이 슬프구나!

 

오오, 異國種(이국종)강아지야
내발을 빨어다오.
내발을 빨어다오.

 

 

《學潮(학조)》 1926. 6.

 

 

참고


옴겨다 : 옮겨다.
棕櫚(종려)나무 : 종려나무과의 늘푸른큰키나무.
빗두루 : 비뚜로, 비스듬히

슨 : 선, 서 있는
장명등 : 처마 끝이나 마당에 세워 놓은 등.
루바쉬카 : 러시아 남자들이 입는 블라우스풍의 상의.
보헤미안 : 사회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방랑적이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가리킴.
압장 : 앞장.
페이브멘트 : pavement. 포장도로.
흐늙이는 : 흐느끼는.
뛰여 : 뛰어.
패롵 : parrot. 앵무(鸚鵡)새.
鬱金香(울금향) : 튜울립.
更紗(사라사): 포루투갈어 '사라사'에 일본사람들이 한자를 붙인 것.

                   사라사: 옷감, 보자기, 이불 등에 사용된 다양한 무늬의 무명 또는 비단천. 남만무역을 통해 일본에 전해짐.
커-틴 : curtain. 커텐.
子爵(자작) : 일제 시대 작위 중 하나. 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
아모것도 : 아무것도.
히여서 : 희어서.
닷는 : 닿는.
뺌 : 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