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말이던가 내가 교수가 되어 처음 겪은 입학시험 때 이야기이다. 전날 필기시험에 이어 면접을 볼 때였다. 면접 시간이 끝나가는데, 지원자 중 한 사람이 오지 않았다. 나이가 꽤 들었고 또 필기시험은 본 것으로 되어 있기에 나는 옆에서 도와주던 조교에게 전화를 걸게 했다. 그랬더니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나는 조교에게서 전화를 건네받아 어떻게 된 것인지 물었다. 대답인즉슨 몸이 아파 면접 시간을 놓쳤다는 것이다. 나는 면접에 응할 생각인지를 묻고 어느 정도 시간이면 면접 장소로 올 수 있는지를 물었다. 30분이면 된다고 했다. 나는 그 정도면 기다릴 테니 곧바로 오라고 했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그러겠다는 대답이 왔다. (그 때 내가 재직하던 학교는 지방의 그리 크지 않은 도시에 있었기 때문에 학교까지 오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에는 면접 관리가 오늘날처럼 엄격하지 않았다.)
면접시간 종료 후 한 시간이 다 되도록 그 지원자는 오지 않았다. 아무 연락도 없었다. 이 일로 해서 입시 업무에 예기치 않은 차질이 빚어졌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당시 나이든 교수 한 분이 이럴 때는 규정대로 해야 한다며 나를 타이르던 생각이 난다.
이번 학기 초에 이 일과 비슷한 일을 겪었다. 4학년을 대상으로 신설한 내 과목이 수강생 1-2명이 모자라 폐강 위기에 몰렸다. (학점을 박하게 준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내 과목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4학년 학생들은 취업 준비 때문에 숙제가 많은 내 과목을 더욱 듣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구차하게 수업을 유지할 생각이 없던 나는 수강신청자들에게 다른 과목으로 변경을 하도록 권했다. 그랬더니 2명이 다른 학교에서 왔다면서 폐강이 안 되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머뭇거리자 우리 학교 학생 하나가 자신도 그 수업을 꼭 듣고 싶으며, 자신이 다른 친구에게 수강을 권유해 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나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다른 수업에서 이 사정을 이야기하고 학생들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그런데 묘하게 1-2사람이 늘어나면 1-2사람이 주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설강 인원이 가까스로 차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뒤이어 그 수업을 꼭 듣고 싶다며 다른 친구에게 수강을 권유하기까지 한 그 학생이 수강 신청을 철회하는 것이었다. 수강 변경 마감일까지는 시간이 거의 남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 학생이 아니었다면 이미 폐강을 결정했을 수업이었다. 그 학생은 자신이 권유한 학생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만 이름을 뺀 것 같았다. 물론 나에게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나는 20여년전 면접에 응하고 싶다던 그 학생을 도와주려다 어색한 상황에 몰렸던 내 자신을 생각하고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그 학생은 왜 마지막 순간에 자기가 한 말과 180도 다른 행동을 한 것일까? 아무튼 나는 곧바로 다른 학생들에게 그 과목이 폐강될 예정이니 시간에 맞게 다른 과목으로 수강신청을 변경하라는 메일을 보냈다. 보내면서도 마음이 영 좋지 않았다. 그 수업이 꼭 설강되었으면 좋겠다던 그 학생의 말이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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