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에는 안국동 쪽에 나가 보았습니다. 내가 어린 시절 등하교길에 오르내리던 바로 그 길입니다.
조계사 바로 옆의 옛 “우정총국” 자리도 둘러보았습니다. 이 곳은 갑신정변이 일어난 곳이고, 그 후에는 “한어학교”로도 사용된 곳입니다. “한어학교”(漢語學校)는 구한말에 세워진 관립외국어학교의 하나로서 중국어를 가르치던 학교입니다. 그런데 이 곳을 설명하는 안내판을 보니 여기저기 문제가 보였습니다.
“한어학교”는 1891년 1차 개교하였다가 1894년에 청일전쟁으로 문을 닫았다가 1897년에 다시 개교하였습니다. 그 후 1907-8년 무렵에 다른 외국어학교들과 함께 “한성외국어학교”로 통합되었는데, 한성외국어학교는 경술국치 직후인 1911년에 폐교되었습니다. 그러니 일제강점기에는 “한어학교”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는데도, 일제강점기에 “한어학교”로 사용되었다고 한글 안내판에 적혀 있습니다.
영문 안내판을 보면 더 기가 막힙니다. “한어학교”를 “Hanah School”이라고 표기한 것도 그렇고, 이 학교를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를 교육하던 학교(providing Korean language education)라는 식으로 설명해 놓았으니 어이가 없습니다. (다른 영어 문제는 이야기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근처에 “도화서 터”라는 표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근처에 “한어학교”뿐 아니라, “아어학교”(러시어어 학교), “법어학교”(프랑스어 학교)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조계사 뒷편의 옛 중동중고등학교 자리에 원래 “육영공원”이 있었고, 이 학교가 후에 “영어학교”로 되었으니, 이 일대를 구한말 외국어교육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변에 이런 사실을 알려주는 표석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한말 외국어학교들은 나름대로 발전을 해오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에 의해 강제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조선이 스스로 외국과 외교를 하지 못하게 하고, 조선인들로 하여금 외국어를 공부할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조선을 강제로 병합한 직후인 1911년에 한성외국어학교를 폐교시킨 것도 다 같은 뜻이었습니다.
참고로 통합 한성외국어학교는 운현궁 맞은편의 천도교 수운회관 자리에서 종로경찰서에 이르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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