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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학위·표절·대학 비리

수오지심--사이비 실천적 지성에게 전혀 없는 것

"수오지심"(心)이라는 말이 있다. 맹자의 4단(四端) 중 하나로,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일컫는 말이다. 맹자는 "수오지심"을 가리켜 "의"(義)의 뿌리라고 했다. 그러니 "의"나 "정의"에 대한 부르짖음은 당연히 이 "수오지심"에서 출발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의 허물을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들여보려고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정의를 내세우고 부르짖는 것 같으니 말이다.

 

학위 조작으로 대학교수 직에 오른 어떤 사람이 듣기에 그럴 듯한 말을 잘 한다고 해서 우리 시대의 실천적 지성이라는 칭송까지 듣는 모양이다. 이 사람은 어느 글에서는 우리 사회의 고학력 부모들이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성적 조작까지 마다하지 않는다며 개탄을 했다고 한다.

 

"학위 조작"으로 대학교수 직에 오른 사람이 "성적 조작"으로 대학에 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대체 어떤 마음 구조에서일까? 그런 사람이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것은 또 어떤 마음 구조에서일까?

 

아무리 우리 사회가 가짜가 행세하기 좋은 사회라 하더라도 이건 아니지 않을까?

 

누가 이런 말을 한 모양이다.

 

“의미, 희망, 정의는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세 개의 지주와 같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지옥의 조건이요 정의 없음은 야만의 조건이며 정의의 부재는 삶의 기쁨과 영광을 박탈하는 형벌과 같다.

 

듣기에는 그럴 듯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말을 한 사람은 과연 "수오지심"의 바탕 위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 단지 말뿐이라면, 그런 사람이 바로 "지옥의 조건",  "야만의 조건"을 조장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마치 대단한 사람이나 되는 듯이 행세하거나 대접받는다면, 그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삶의 기쁨과 영광을 박탈하는 형벌"을 지우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뿐이기는 얼마나 쉬운가?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더 행세한다. 우리 사회에서 행세하는 그 수많은 가짜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