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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내 이야기

What God and Man Is

학생들에게 ‘man’ 앞에 부정관사나 정관사가 사용되지 않으면서 인류 전체를 나타내는 경우의 예 (보기: Man is a social animal/Man does not live by bread alone 등. 자세한 내용은 졸저 『영어 관사의 문법』 참조)를 찾아오라는 숙제를 내었더니, 어떤 학생이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 중 다음 구절을 예로 찾아왔다.

 

                    I should know what God and man is.

 

그 학생의 그렇게 생각한 것은 위의 시구를 어느 영문학자가 다음과 같이 번역했기 때문이었다.

 

                    하느님과 인간이 무언지 알 수 있으련만.

 

그런데 테니슨의 시 원문에서 ‘God and man’은 ‘하느님’과 ‘인간’을 따로 지칭한 것이 아니다. 따로 지칭했다면 그것을 받는 동사는 복수형 ‘are’가 되었어야 할 것이다. 시인이 여기서 의도한 바는 ‘하느님이며 동시에 인간’인 어느 대상이다. 그렇게 해석해야만 동사형이 단수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위의 예에서 ‘man’은 인류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시인이 의도한 ‘하느님이며 동시에 인간’인 그는 누구일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 시 전문을 보도록 하자.

 

Flower in the Crannied Wall

 

Flower in the crannied wall,

I pluck you out of the crannies,

I hold you here, root and all, in my hand,

Little flower—but if I could understand

What you are, root and all, all in all,

I should know what God and man is.

 

Alfred, Lord Tennyson (1809-1892)

 

그리고 다음은 학생이 참조한 번역이다.

 

암벽 사이에 핀 꽃 (알프레드 테니슨)

 

틈이 벌어진 암벽 사이에 핀 꽃

그 암벽에서 널 뽑아들었다.

여기 뿌리까지 널 내 손에 들고 있다.

작은 꽃—하지만 내가 너의 본질을

뿌리까지 송두리째 이해할 수 있다면

하느님과 인간이 무언지 알 수 있으련만.

(번역 출처: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4/10/31/2004103170125.html)

 

 

역자는 위의 시를 읽으면서 ‘화려한 꽃 뒤에 숨어 있는 작은 풀꽃의 아름다움’에 주목하지만, 그것보다는 그 꽃이 ‘벽 틈’에서 피어났음에 더 주목해야 한다. 꽃씨는 땅에 묻혀야 생명을 피워낼 수 있는 것이다. ‘벽’에 떨어진 씨는 생명을 틔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벽은 죽음을 상징한다. 그런데 시인은 그 벽 틈에서 피어난 꽃을 들고 서 있는 것이다. 그 꽃은 죽음에서 피어난, 다시 말해 죽음을 이겨낸, 생명이다.

 

죽음을 이겨낼 수 있는 피조물은 없다. 오직 하느님만이 죽음을 이겨낼 수 있다. 그런데 벽 틈에서 피어난 그 작은 꽃은 피조물이면서 죽음을 이겨내었다. 마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렇기에 시인은 그 꽃을 이해할 수 있다면, 하느님이면서 동시에 피조물로 이 세상에 오신, 즉 하느님이며 동시에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노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