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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내 이야기

5월에는 우울한 일이 많았다

 

5월에는 우울한 일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10년 이상 곪아온 영어학부 문제가 해결의 문턱에서 좌초된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상심이다. 10여년 전에 영어교육과와 영어영문학과가 합쳐 출범한 영어학부는 그동안 이기적인 몇몇 교수들과 그들에 순응하는 여타 교수들 때문에 문자 그대로 지리멸렬이었다.

 

이번 학기 들어 힘들게 전체 구성원이 합의해 두 과로 분리하는 안이 마련되었는데, 한 동안 학교 당국자가 반대하여 일이 어렵더니, 마지막 순간에 당국자가 동의하자 갑자기 학생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안이 최종 좌초되었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합의안을 변형시키려는 일부 교수의 꼼수가 있었고, 결정적 순간에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우왕좌왕하여 일을 그르치게 만든 사람도 있었다.

 

이제 나도 정년퇴임까지 10년도 안 남았다. 대한민국의 대학 영어프로그램이 얼마나 부실한지,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 절감하고 있는 나로서는 기존의 구태의연한 영어 프로그램과 질적으로 다른 영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자 하는 꿈을 오랫동안 품어왔다. 이는 1차적으로는 학생들을 위한 것이고, 2차적으로는 우리나라 대학 영어프로그램의 혁신에 나름대로 기여하고자 하는 희망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주를 기점으로 이제 더 이상 그런 희망을 갖지 않기로 했다. 학생들이 반대하는 이유가 동아리 활동 때문이라니, 이제는 학생들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갖지 않기로 했다.

 

차제에 일반대학원 강의도 더 이상 맡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보아온 대학원 학생들의 눈치보기는 그야말로 실망 그 자체였다. 괜찮은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부실한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균형 있는 대학원 프로그램 같은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고, 그저 학위나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니,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이 선택한 지도교수의 종이 되면 그만이었다. 다른 교수들의 수업에는 아예 신경을 안 쓰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숙제를 제대로 해오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수업 시간에 졸거나 멍한 채로 있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면서도 지도교수가 요구하는 부당한 잡일이나 부조리에는 아무 항변도 뭇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대학원에서 그 분야 수업을 한 과목도 듣지 않은 교수를 그 분야 전문가라며 주렁주렁 박사 과정 학생들이 매달리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학생들의 교육에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제대로 된 지도를 받기보다는 그저 쉽게쉽게 논문을 통과시켜주는 교수를 원할 뿐이다.

 

학생들에 대한 실망이 계속되다 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스승의 날 즈음에 전화를 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 다음 주에 찾아오겠다는 전화였다. 흔쾌히 약속을 하였다. 얼마 후 그 졸업생이 다시 전화를 걸어와 지리산으론가 놀러가게 되어 약속을 연기해야겠다며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지리산으로 놀러갈 기회가 생겼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을 수는 없었을까? 교수와의 약속이라서가 아니라, 친구와의 약속이라도 그렇게 일방적으로 취소하거나 변경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우울했던 5월을 보내며 다시는 안 되는 일을 되게끔 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무엇보다도 약속을 소홀히 여기며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과는 아무 일도 함께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실망을 한 것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그런데도 나는 왜 이번에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기대를 품은 것일까? 나의 어리석음이 느껴져 또다시 우울해진다.